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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원사공 김적선(金積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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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봉 작성일09-01-31 15:03 조회1,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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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중추원사 (商議中樞院事) 휘 적선(積善)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 제35권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인물편.

김적선(金積善) 김승진의 아들로 홍무(洪武) 연간에 남원도 병마사(南原道兵馬使)가 되어
왜병과 사포(沙浦)에서 싸웠고, 또 임실(任實)에서도 싸웠는데 모두 크게 승리했다.
벼슬이 중추원사(中樞院事)에 이르렀다.


조선왕조실록 기록

* 태조 4년 을해(1395) 7월 10일(신축)
“일본국 진서 절도사(鎭西節度使) 원요준(源了俊)은 조선국 두 시중상공합하(侍中相公閤下)에게 글월을 올립니다. - 중략 - 귀국 사신 호조 전서 김적선(金積善)을 뵈오니 두 《장경(藏經)》을 호송해 주시어 금년 3월 초8일에 배를 이 포구에 매어두고 귀한 글월을 받았습니다. 봉함을 뜯고 절하고 읽어 보니 귀국의 은혜에 감동됨이 마치 바다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종교에 빛이 있고 산천이 더욱 중해지니 이마에 손을 올리기 한이 없습니다. 이번에 함께 온 두 절 중과 더불어 길이 받들어서 귀국의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정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또 채색 등 물건을 받자오니 서울에서 구하여 온 사신 김호조(金戶曹 - 김적선을 뜻함-)와 함께 실려 보낸 것이오라, 이번에 백원 시종(白垣侍從) 종구를 임명해 먼저 보내어 특히 감사의 성의를 표하오니 다행히 살피소서. 근일 첫여름에 나라를 위해 자중하기를 엎디어 바라오며, 다 할말을 못합니다.” 하였다.

* 태조 4년 을해(1395, 홍무 28) 12월?14일(계묘)?
회례사(回禮使) 김적선(金積善)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 태조 5년 병자(1396, 홍무 29) 8월?25일(경술)?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김적선(金積善)을 남경에 보내어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게 하였다.

* 태조 5년 병자(1396, 홍무 29) 11월?6일(경신)?
권중화(權仲和) 등이 말하였다.“김적선(金積善) 등이 등주(登州) 바다를 지나다가 풍랑을 만나서, 배가 부서져 일행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 태조 6년 정축(1397, 홍무 30) 6월?10일(경인)?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서 예부(禮部)에 신청하여, 김적선(金積善)의 아들 김자구(金自龜)로
하여금 아비의 시체를 찾아 얻어서 돌아와 장사하게 하기를 빌었다.

* 태조 6년 정축(1397, 홍무 30) 9월?23일(임신)?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김적선(金積善)의 아들 김자구(金自龜)가 등주(登州)에 가서
아비의 뼈를 거두기를 청하니, 통역하는 사람을 주어 보냈다.


호정(하륜)문집((浩亭 河崙文集)3권 경평공 노숭 묘지명에 있는 휘 적손 사위와 외손기록

* 輔國崇祿大夫檢校議政府右議政,集賢殿大提學,敬平公 桑村 盧(嵩)公 墓誌銘
(五子)尙信。廣州牧判官 判官娶商議中樞院事 金積善之女。生男三。長 孝民(掌令)。
次 忠民(郡守)。次 悌民。女四皆幼。

중추원사공 (휘 적선)의 아드님은 판관공(判官公) 자구(自龜)와 문과급제하여 부사(府使)를 지낸
자린(自麟)이 있으며 따님은 판관을 지낸 光州人 노상신에게 출가하였다.

* 보첩에 一子 自麟 만 등재되어 있으나 왕조실록에 의하면 전주판관과 순천군사를 지낸 아드님 自龜가 있고
노숭묘지명에 광주판관을 지낸 노상신에게 출가한 따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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