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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사 김경현

이사회 의장 김용규

보사연구위원회 위원장 김장윤

도올 김용옥

고문 김영호

대종회 상임고문 김윤중

문정공파종중 도유사 김선만

문숙공파종중 도유사 김용수

양간공파종중 도유사 김광수

광절공파종중 도유사 김용단

대종중전자족보 편집위원장

문숙공후 예조판서공 후손 재성


발행사 축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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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사 김경현   

명문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에서 집니다. 오늘도 그리하였고 내일도 모래도 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들 시야에서 뜨고 질뿐입니다. 광산김씨의 족보는 용계공(지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용계보 이후 외손 송희업이 영남의 종인들과 족보를 만들었으나 이 또한 궐루가 많았습니다. 사계(장생)선생이 이 양보를 보완하여 족보를 만들고 다음에 보학에 밝은이 나오거든 바로잡으라 하였습니다.

 

사계선생 이후 서석(만기)이 서석보를 만들고, 서석공의 아들 죽천(진규)이 죽천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후손들이 이를 지키지 못하여 오늘에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정묘 병자 장성 대보가 판각본으로 나오고 한성보가 활자본으로 나와 오늘에 전합니다. 살피건대 우리 족보의 수보는 황대전고공(이)이 광산에 제안사로 와서 쓴 글 [광산현제영시서]를 근간으로 편성되었으며 다음으로 충정공(의원)의 묘지문 출현으로 인하여 변경이 있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대종회에서 주관한 광산김씨 선대연구위원회에서 사학자 김용섭 교수와 보학자들이 연구한 성과에 따라 우리의 족보 체계는 또다시 변경이 요구되었고 그 결과가 평장대보 발행입니다.

 

평장대보의 발행은 우리 광산김씨사에 한획을 긋는데 역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손록 30세 이하 계보의 생략은 대동보로써 아쉬움이었으며 또 계보와 세수의 변경은 학습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자족보화된 작금의 세태에서 우리는 여기에 미치치 못하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이에 불초한 본인이 취임하여 각 종파의 건의와 특히 젊은 종원들의 희망을 외면할 수 없어 불민을 무릅쓰고 평장대보의 중간과 속간을 결심하고 그 역사의 대장정에 앞장섰습니다.

 

시간의 짧음과 부족한 소통은 인위적으로 불가피하였습니다. 이를 극복해주신 실무자 여러분과 보사연구위원들의 열정과 노고에 경의와 감사드립니다. 또한 유종의 미를 위하여 뜨거운 성원과 협조를 보내주신 일가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홈페이지 개설이 명문의 후예로써 자긍심 함양과 보학과 종사에 도움되었으면 하는 소이연을 담아 발행사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2월 30일

광산김씨 대종증 도유사 김 경 현